아시아 미래포럼

알림마당

알림마당

보도자료

보도자료

원전 폐기물 98% 포화…‘영구 방폐장’ 공론화 머리 맞댄다

[기사 원문: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66279.html] [2022 아시아미래포럼] 세션4탄소중립 위한 사용후핵연료 해법가동 43년째 원전 내 폐기물 보관이해관계 얽혀 방폐장 논의 표류친핵·탈핵 대립 고착화 부작용도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해 12월 경북 울진군 신한울 원전 건설중단 현장을 방문해,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 등의 원전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해법은 더는 회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연료로 사용된 뒤 남은 위험 물질이다. 1978년 고리 1호기 가동 이후 43년 동안 처분장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됐으나, 지금까지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가동 중인 원전 24기에서는 매년 750톤 정도의 사용후핵연료가 계속 쌓이고 있다. 누적량은 2021년 기준 1만7862톤에 이른다. 현재 이것들은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보관 중이다. 2021년 4분기 현재 전체 저장용량 대비 포화율은 98.1%에 이른다. 포화율이 가장 높은 월성 원전은 올해 조밀건조식저장시설(맥스터) 증설로 여유분을 확보했다. 하지만 부산 고리와 영광 한빛은 2031년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나머지 원전의 포화도 시간문제이다.가장 안전한 방법은 최종(영구) 처분장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원전 가동이 4년 늦은 핀란드는 세계에서 최초로 부지 확보에 성공해 처분장을 건설 중이다. 스웨덴도 부지를 확정하고 허가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문재인 정부 때 마련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처분장 확보기간으로 부지 선정절차 착수 이후 37년 이내로 상정했다. 외국 사례로 보면 안전한 방폐장 건설을 위해서는 부지선정 착수부터 시설운영까지 약 40년이 소요된다. 우리가 당장 2023년 부지선정 절차를 시작해도 대략 2060년대에나 실제 운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는 ‘친원전’ 정책을 천명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서두르고, 설계수명이 끝난 10개 원전의 수명도 연장할 계획이다. 원전 비중을 높이면 폐기물은 더욱 빨리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용후핵연료 해법이 없는 친원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과 같다. 정부는 지난 9월 원전을 포함하는 ‘한국형 녹색 분류체계’(K-택소노미) 초안을 내놓았다. 유럽연합은 이에 앞서 에너지 위기를 반영해서 ‘그린 택소노미’에 원전과 천연가스를 포함했다. 대신 높은 수준의 안전 기준 적용을 의무화했다. 2025년부터 사고저항성핵연료(ATF) 사용, 2050년까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 부지 확보와 시설 가동 개시를 위한 세부계획 수립을 요구했다. 정부 초안은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 시점을 유럽연합보다 6년 뒤인 2031년으로 늦춰 잡았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부지 확보 및 건설 시점은 아예 제시하지 못했다. 정부는 고리 원전도 발전소 내 임시 저장시설(맥스터) 설치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정부가 사회적 합의에 바탕한 근본대책 마련은 뒷전으로 미루고 임시저장시설 확충에만 급급한다면 사회갈등을 심화시키고 영구처분장 건설은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는 지자체와 손잡고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지를 대상으로 9차례나 방폐장 부지 확보를 시도했으나 주민 설득에 실패했다. 이후 참여정부는 사용후핵연료와 중·저준위 방폐물 관리시설 분리 추진 등 관리정책의 큰 틀을 마련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공론화를 거쳐 고준위 방폐물 중장기 관리계획 등의 정책을 수립했다. 문재인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준비단과 재검토위원회를 운영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관 주도 하향식 관리에서 벗어나 시민참여에 기초한 상향식 관리 방식으로 전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정부, 시민사회, 지역사회는 대립과 갈등 속에 합의에는 실패했다. 오히려 친원전과 반원전, 찬핵과 탈핵의 대립구도만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지역주민 등 이해당사자를 포함한 사회적 합의가 기본 전제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대표성과 절차의 공정성, 투명성, 숙의성 확보 등이 핵심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는 모든 이해당사자가 자기 주장만 옳다고 할 게 아니라 전체 사회의 이익과 미래 발전을 고려해서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반(탈)원전, 친원전 진영 모두 집단적 이해를 우선하며 의도적으로 지연 또는 외면 전략을 구사한다는 지적도 있다. 반원전 진영은 방폐장 합의가 원전의 지속과 확대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친원전 진영은 이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공론화의 덫’을 경계한다. 정부도 자신의 임기 중에는 정책 결정의 위험을 회피하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다는 지적을 듣는다. 정치권은 유권자 표에만 영합하는 포퓰리즘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비판이 많다. 이해당사자들이 진정으로 사회적 합의를 바라지 않는다면 공론화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우리가 해법 마련 진정 원하는지공론장 참여자·지역 범위 논하고관련 조직·법규 개편 필요성 살펴 사용후핵연료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합리적인 해법을 찾는 토론회가 제13회 아시아미래포럼의 제4세션 행사로 열린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에너지 정의 포럼’이 주관하는 토론회에서는 세가지 핵심 의제가 다뤄질 예정이다. 첫번째는 우리사회가 진정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해법 마련을 원하는지 묻는 것이다. 두번째는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과정과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의 재검토위원회에서는 주민 의견수렴 절차만을 관리하는 중립적 위원으로 구성한다는 명분으로 지역주민 및 탈핵 시민단체의 직접 참여를 배제해, ‘반쪽짜리 공론화’로 전락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전국 및 지역단위 공론화에 지역주민 및 탈핵 시민단체 활동가의 참여 여부, 지역주민의 참여 보장 범위를 원전 반경 5km 이내 기초 지자체로 제한할지 아니면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범위인 반경 30km 이내로 확대할지도 관건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합의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선결조건 마련이다. 관주도 공론화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공정하게 과정을 관리하고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전담할 독립적 행정위원회(가칭 고준위방사성폐기물위원회)를 총리실 아래 신설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사용후핵연료 용어에 대한 정의 규정조차 없을 정도로 허술한 관련 법규의 정비도 시급하다. 우리사회가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등 양극단으로 갈라져 접점 찾기가 갈수록 어려지는 현실이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당장 원전을 없앨 수 있는 ‘마술’이 존재하지 않는 한 친원전과 탈원전의 입장차이와 상관없이 해법을 마련해야 할 사안이다. 여야 의원들도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등을 담은 3개의 특별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윤석열 정부도 특별법 제정을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토론회가 사회적 합의로 가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의미가 클 것이다. 토론회에서는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실장이 ‘사용후핵연료 해법-쟁점과 대안’으로 주제발표를 한다. 토론에는 김학린 단국대 교수의 사회로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장, 송종순 조선대 교수, 정정화 강원대 교수(전 재검토위원장), 이강원 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 이상홍 전 경주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이재학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고준위추진 단장, 박태현 산업통상자원부 원전환경과장이 참여한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언론 냉소의 시대, 정파성과 공정성의 ‘균형’을 찾아라

[기사 원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066262.html]​ [2022 아시아미래포럼] 세션2신뢰받는 저널리즘의 조건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언론은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저널리즘 모델로 전환할 수 있을까? 사건 현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중인 기자들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신문에서 봤다”면 논쟁이 정리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언제 부터인지 언론에는 불신이란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됐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언론은 개인을 대신해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해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언론이 기대에 맞게 제 역할을 하고, 시민은 그렇게 생산된 뉴스를 믿을 때 건강한 공론의 장이 형성되고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하게 된다. 그래서 뉴스, 기자, 언론사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높이는 것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시민들 언론존재 회의감 느껴독자소통 강화·투명성 등 담보새 저널리즘 모델 구축 필요성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이해해야 하듯 언론의 신뢰를 높이는 일도 마찬가지다. 여러 언론사와 연구소가 언론의 신뢰도를 조사해 공표한다. 그런데 언론을 신뢰한다는 게 무슨 의미이고, 그 신뢰가 어떤 요소로 이뤄져 있으며, 측정은 어떻게 하는 지에 대한 합의는 없다. 언론에 대한 신뢰는 단순하지 않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라면 독자들은 저널리즘 원칙을 지키는 언론 보다는 팬덤과 진영논리에 영합하는 뉴스가 더 믿을 만하다고 보기도 한다. 한국처럼 정부, 사법부, 의회 등 공적 영역의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 언론만 유독 신뢰가 높을 수 없다. 클릭을 노리는 허접한 기사가 공들여 쓴 기사를 밀어내는 포털 환경에서 독자는 모든 언론이 ‘오십보 백보’라고 싸잡아 불신하기 쉽다.  ‘신뢰받는 저널리즘의 조건’을 주제로 한 오후 세션2에서 민영 고려대 교수(미디어학)와 이상원 미국 뉴멕시코 주립대학 교수(커뮤니케이션학)는 언론과 신뢰의 복잡한 관계를 하나하나 풀어간다. ‘불신을 넘어 냉소로: 언론 신뢰 위기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이란 발제에서 이들은 현재 언론과 시민의 관계는 신뢰하락이나 불신의 개념으로 설명하기는 부족하다고 진단한다. 뉴스의 품질에 대한 실망(불신)이 심해지다 보니 이제는 언론의 존재이유를 근본적인으로 회의(냉소)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판단이다. 독자는 뉴스의 품질이 낮고 정파성에 찌든 이유가 상업적 이익을 위해 공적책무를 저버릴 수 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란 인식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결국 신뢰를 기반으로 언론사가 존립하는 새로운 저널리즘 모델로 전환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독자와 더 소통하고, 투명성·다양성·유용성 같은 가치를 담아 이용자 중심의 뉴스를 만들 때 길이 열릴 것이라는 게 발제자들의 제언이다.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위원장이기도 한 박재영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는 언론 신뢰와 관련해서 좀 더 실천적인 주제를 탐구한다. 그는 ‘가치, 정파성, 공정성의 균형: 영·미 신문이 대통령과 정치를 보도하는 방식’ 이란 발제에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어떻게 하면 언론이 가치를 중심에 두고 정파적이되 편파적이지 않은 보도를 할 수 있는가” 를 묻고 답을 모색한다. 박 교수는 정론지로 분류되는 해외 유력매체 즉, 미국의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영국 <가디언>의 정치보도 방식이 한국의 그 것과 차이나는 두 지점에 주목한다. 먼저 사실과 의견의 분리이다. 잘 알려졌듯이 영·미의 유력 언론은 선거 국면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있으면 이를 공개적으로 밝힌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를 지지한다고 사설을 썼다. 하지만 이런 노골적인 정파성은 사설과 칼럼에 한정될 뿐이고 뉴스 보도와는 상관이 없다. 사설과 칼럼을 쓰는 논설실과 편집국은 인사 교류도 거의 없고, 기사와 사설의 논조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다. 기사와 논설의 경계가 뚜렷하고, 일반 기사에서 자사의 의견이나 기자의 정치적 선호가 드러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게 박 교수의 관찰이다. <뉴욕타임스>의 백악관 담당기자 피터 베이커가 “기자로서 우리 일은 관찰이지, 참여가 아니다. 나는 어떤 후보도 지지하지 않고 투표도 하지 않는다. 사적에서도 공적 이슈에 대해 강한 입장을 취하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한 말이 상징적이다. 한국의 편집국은 데스크와 기자가 칼럼을 쓰는 게 보통인데, 독자가 그들이 다루는 기사에 대해 선입관을 가질 수 있다고 박 교수는 지적한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노골적 정파성 지닌 영·미 언론사실보도·의견 나눠 신뢰확보균형·포용 … 한국언론에 시사점   다음은 정치기사를 다루는 방식이다. <가디언>과 <뉴욕타임스>는 정치인의 말 싸움, 즉 정쟁을 다루는 뉴스가 거의 없다. 정당 활동이나 당 내부의 갈등은 거의 보도하지 않고, 정치평론가의 논평 한마디가 기사화되는 사례도 거의 없다. 대신 그들이 다루는 것은 정책과 법안의 내용, 형성과정, 그 사이의 이견과 갈등이다. 보도의 형식에서도 상대진영을 포용하고, 의견이 다른 취재원의 균형을 이루며, 많은 수의 취재원으로 부터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려 노력한다. 이렇게 사실과 의견을 분리하고, 사실 기사의 진실성을 높임으로써 정파성과 공정성이 크게 파열음을 내지 않고 합을 맞춰가는 것 아니냐는 것이 박 교수의 분석이다.   배정근 숙명여대 교수(미디어학)가 이끄는 토론은 윤석민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최상훈 <뉴욕타임스> 서울지국장, 이현경 <옥천신문> 편집국장, 정소현 <시사위크> 편집국장, 권태호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이 토론에 나선다. 토론자들은 △ 앞선 두 발제에 대한 언론학자의 비평 △신뢰도 높은 해외언론의 경험 △독자와의 관계맺기로 신뢰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사례 △문제해결(솔루션) 저널리즘을 통한 신뢰향상 방안△국내 언론사 중 처음 최근 신뢰보고서를 한겨레의 경험을 각각 풀어낼 예정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bhlee@hani.co.kr

팬데믹 속 각자도생 심화…기업·복지·교육의 역할은

[기사 원문: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66261.html] [2022 아시아미래포럼] 세션3어떻게 신뢰의 다리를 놓을 것인가기업 ESG 앞장서 사회문제 해결복지정책 한계, 시민사회 연대로 극복수평적 공교육, 사회신뢰 향상에 도움팬데믹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제도와 정부, 언론, 기업 등 사회 구성원에 대한 신뢰에 큰 상처를 남긴 것으로 나타났다. 에델만코리아가 지난 2월 발표한 2022년 ‘신뢰도 지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정부, 언론, 기업, 비영리기관 등 사회 주체 전반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가 모두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가장 믿을만한 기관으로 비영리기관(48%)을 꼽았으며, 기업(43%), 정부 (42%), 언론(33%) 순으로 신뢰했다. 불과 2년 전만해도 67%로 가장 높은 신뢰도를 기록했던 정부는 ‘사회분열을 초래하는 기관’ 항목에서 48%로 언론(58%)의 뒤를 이었다.펜데믹 기간 동안 가짜뉴스와 잘못된 정보로 불안을 조장한 언론에 대해 시민들의 불신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언론을 제재하지 않고 방조하거나 악용하는 정부와 정당도 시민들의 신뢰를 함께 잃고 있다. 이러한 신뢰 상실의 위기와 각자도생이 팽배한 상황에서 사회적 신뢰를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아시아미래포럼 특별세션 ‘어떻게 신뢰의 다리를 놓을 것인가: 솔루션 탐색을 중심으로’는 팬데믹 등으로 더욱 중요해진 사회적 신뢰의 의미를 짚어보고, 불평등, 양극화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논의한다. 이형희 에스케이 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은 기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신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에스케이그룹의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이끌고 있는 이 위원장은 국내 ESG 생태계를 구축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기업이 신뢰에 이르는 여정’이란 주제의 발표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해 사회문제 해결하기 위해 조직된 ‘신기업가정신협의회’를 소개한다. 지난 5월 에스케이, 삼성, 엘지 등의 대기업을 비롯해 251개 국내 기업들은 이윤과 일자리 창출 외에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디지털전환 등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기업의 역할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경제적 가치 제고 △윤리적 가치 제고 △새로운 기업문화 조성 △친환경 경영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 등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한 협의기구인 ‘신기업가정신협의회’를 출범했다. 이 위원장은 기업의 변화에 대한 의지와 성과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소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90년대 초까지 압축적 경제발전은 경제성장이 우선시되고, 분배와 사회복지의 확대가 경제를 저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게 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신뢰의 역설’ 발제에서 비정규직, 플랫폼노동 등 표준적 고용관계를 벗어난 노동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실질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회보장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압축적 경제성장과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변화하지 않는 사회보장제도는 여성, 노령, 플랫폼종사자 등 노동 사각지대를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이 교수는 이같은 복지정책의 표류로 등장하는 사회의 새로운 승자와 패자집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라이더유니온, 알바노조 등 새롭게 떠오르는 노동조직들이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을 소개하며, 전통적 노동조합, 혹은 다른 시민사회와의 연대의 가능성을 고민해본다.마지막 발제자인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기초교육학)는 저신뢰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 환경 속에, 공교육이 사회자본 축적에 도움이 되는 방안들을 소개한다. 한국은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타인에 대한 신뢰가 다소 높지만, 기관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은 경향을 보인다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사회자본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의 내용보다 방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수평적·참여적·협력적 교육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17년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수행한 수업방식과 사회자본에 관한 교육실험을 소개하며, 수평적 수업이 타인간 상호작용을 높이고 제도와 규범에 대한 신뢰를 높일수 있는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이러한 수업방식이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팀 단위 평가, 과정 중심 평가 등 평가제도와 수업 운영 중심의 교원 인사 시스템의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토론자로는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를 비롯해 최영준 연세대 교수(행정학), 김진영 건국대 교수(경제학)가 나서며, 정건화 한신대 교수(경제학)가 좌장을 맡는다. 토론자들은 기업이 신뢰자본 축적에 기여하는 방안, 노동과 복지제도의 불일치 속 신뢰 향상 방안, 정부·사법부·전문가 등 사회주체별 신뢰 회복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더나은사회연구센터장 ekpark@hani.co.kr

“외로우니 ‘우리’ 속삭이는 극단주의 경도”…‘고립’ 정치 의제돼야

[기사 원문: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66235.html]  [2022 아시아미래포럼]  노리나 허츠 기조강연: 디지털시대 사회적 신뢰 어떻게개인의 우울, 사회적 위험으로 번져정치적 극단주의 불러 민주 역행게티이미지뱅크하루 동안 사람을 직접 만나 대화하지 않고 생활해야 한다면 어떨까? 아마 “충분히 가능하다”고 답하는 이들이 꽤 많을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비대면 생활에 많은 이들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배달 앱’으로 주문·결제하면 배달원과 마주치지 않고도 음식을 받을 수 있다. 줌(Zoom)과 같은 화상 회의 도구를 활용하면 굳이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수업을 듣거나 일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심지어 운동·취미 모임 등도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진행 가능하다. 우리는 방 안에서 누구와 접촉하지 않고도 너끈히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애석하게도, 비대면 생활의 편리함은 사회적 관계와 유대감 등을 잃고 얻은 대가다. 기술이 모두를 촘촘하게 연결해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개개인이 분리되면서 각자가 느끼는 외로움은 심화됐다. <고립의 시대> 저자인 노리나 허츠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세계번영연구소 명예교수는 “(팬데믹 기간 동안) 사회적 결핍이 심해지면서 점차 ‘면 대 면’으로 만나고 싶어하는 욕구가 늘어났다. 최근 사람들이 여러 음악 페스티벌, 대면 모임 등에 몰리는 것이 그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립’의 문제를 개인적 우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위험의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다. 노리나 허츠10월4일 영국 런던 자택에서 만난 그는 “외로움은 정치적으로 극단주의를 조장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올 뿐 아니라 경제에도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노리나 허츠는 11월10일 열리는 ‘제13회 아시아미래포럼’의 두번째 세션 ‘디지털 시대, 새로운 신뢰는 가능한가’에서 기조 연사로 나서 발제할 예정이다.정부가 의도적으로 ‘고립’ 의제화해경제지표 외에 정서지표도 만들고공동체 형성되도록 지원할 필요IT기업 사회적 책임 더 부여해야허츠가 정의하는 ‘외로움’은 친구·연인·가족 등 친밀한 관계가 단절된 느낌이나 우울·불안·쓸쓸함 등에만 그치지 않는다. 세계화, 불평등 심화, 경제위기, 기술 발달 그리고 코로나19 등을 거치면서 외로움의 형태는 달라졌다. 외로움은 이제 “정치인과 정치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 일터에서 소외된다는 느낌, 사회 기준만큼 소득을 벌지 못해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힘없는 존재라 무시받는 느낌”까지 아우른다. ‘우리’를 강조하며 소속감을 제공하는 극단주의자들에게 외로운 이들이 표를 던지는 이유다. 이러한 단절은 사회적 신뢰를 쌓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허츠는 “보통 외로움을 측정할 때 ‘당신은 얼마나 외롭나’를 직접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댈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되는지,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신뢰하고 의지하는지 등을 묻는다. ‘외로움’을 정의할 때 신뢰가 부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요소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결국 고립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는 건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엇이 필요할까. 허츠는 온라인, 특히 소셜 미디어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동시에 다양한 사람이 오프라인에서 만나 어우러질 수 있는 장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에 ‘메타버스’가 각광을 받았지만 이렇게 디지털 교류가 활성화하는 걸 독려하는 분위기를 재고해 봐야 한다. 특히 소셜 미디어가 중독적으로 설계돼 있어 미성년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점을 고려하면 정보기술(IT) 기업에 적극적으로 페널티를 부여하는 방향도 검토해야 한다.” 그는 페이스북·스냅챗·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지금보다 더 큰 사회적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진행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 사용과 외로움 사이에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소셜미디어 사용량이 많은 청소년일수록 또래보다 외로움을 더 많이 호소하는 연구 결과, 소셜미디어 사용량을 플랫폼당 하루 10분으로 제한했더니 외로움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 등이 있다.” 온라인 소통에 집중하는 사이, 현실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법을 잊어버린 세대도 등장했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한 대학교에선 ‘표정 읽는 방법’이란 보충수업이 개설되기도 했다. 대학 신입생 상당수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표정 등 여러 단서를 읽어내지 못하는 점을 우려해서다. 휴대전화 화면에서 벗어나 현실로 나아갈 때 고립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허츠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일관되게 사람들과 더 접촉할 것,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할 것, 돌봄·온정·포용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재편할 것 등을 주장한다. 그는 특히 서로 다른 계층과 집단의 사람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인프라가 정책적 차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동체 모임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시카고 공공도서관은 대표적으로 참조할만한 사례”다. 이곳에선 서로 다른 세대, 사회경제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영화를 관람하고, 담소를 나눈다. 임대 주택에 사는 아이나 민영 아파트에 사는 아이나 똑같이 환영받는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도록 인프라를 만드는 데 정부의 ‘의도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플랫폼 노동’, ‘0시간 계약’ 등 불안정한 노동 형태가 ‘뉴 노멀’이 된 시대에 외로워진 노동자들이 뭉칠 수 있도록 노조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다. 그는 “‘긱 경제’가 대두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노조의 힘이 떨어지고 있긴 하지만 오히려 이를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무노조 경영’을 이어오던 아마존에서 노조가 만들어진 것은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외로움을 느끼는 노동자일수록 생산성도 떨어지고 이직률이 높으며 회사에 대한 충성도도 저하될 수 있다는 점을 고용주도 인지해야 한다. (노조 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노동자들 간 유대감을 늘리는 시도가 오히려 기업을 경영하는 차원에서도 이익이 된다.” 허츠는 이같은 고립과 단절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네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하나는 정부가 적절한 예산을 투입해 ‘고립’을 정치적 의제로 만드는 것, 두번째는 도서관·카페·공원 등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서 교류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정부나 지자체 등 여러 주체가 만들어주는 것이다. 세번째는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가 발표했듯 국가의 예산과 정책 목표를 수립할 때 성장률, 생산성과 같은 경제적 지표 뿐 아니라 친절, 온정과 같은 사회적 인식과 삶의 질 등을 지표로 반영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중독성을 따지면 21세기 담배산업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적용하는 일이다. 허츠 교수는 “한국이 겪는 여러 문제는 결코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라면서도 정치, 기업 등 여러 주체가 ‘외로움’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런던(영국)/박다해 <한겨레21> 기자 doall@hani.co.kr노리나 허츠· 1967년생 영국 국적·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세계번영연구소 명예교수· 다위센베르흐 금융전문대학원, 로테르담 경영대학원 글로벌 전략부문 교수· 케임브리지대 국제비즈니스경영센터 부소장 

불평등·양극화, ‘나에서 우리’ 공동체 복원으로 넘어서야

[기사 원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rights/1066234.html]​ [2022 아시아미래포럼]로버트 퍼트넘 기조강연: 사회적 자본, 어떻게 회복할까2018년 서울시 교육청 초청 포럼에서 강연하는 로버트 퍼트넘 교수 <연합뉴스> 제공사회경제적 불평등 , 정치적 양극화 , 고립과 혐오는 우리시대 잿빛 자화상이다 .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정착되었지만 사회적 유대와 신뢰 , 상호관용 등 규범은 취약하다 . 제 13회 아시아미래포럼 기조강연을 맡은 로버트 퍼트넘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사회적 자본 개념을 통해 현대 미국사회의 위기를 분석한 세계적 석학이다 .       오늘날 고전의 반열에 오른 그의 명저 <나홀로 볼링 >은 ‘사회적 커뮤니티의 붕괴와 소생 ’이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사회의 상승과 하락을 공동체로 상징되는 사회적 자본을 통해 파헤친다 . 볼링은 함께 치는 스포츠인데 이제는 홀로 볼링을 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꼬집는 제목이다 .       개인간 연대·신뢰가 사회적 자본삶의 질 낮은 원인 ‘공동체 약화’       퍼트넘 교수가 보기에 1960년대는 미국에서 지역사회의 일상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정체성 , 호혜성의 공감대가 매우 높았던 시기로 계층간 이동성도 활발했다 . 1970년대 이후에도 미국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평균수명 , 교육수준 등 사회경제적 지표는 상승했다 . 하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삶의 주관적 만족도는 하락하고 청소년 자살률은 상승하는 등 도처에서 부정적 지표들이 터져나왔다 . 퍼트넘 교수는 그 원인을 공동체의 약화 , 헐거워진 신뢰 등 사회적 자본의 하락에서 찾았다 .      사회적 자본이란 개인들 사이의 연계 , 여기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네트워크 ,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을 의미한다 . 사회적 자본이 축적된 공동체에서 신뢰에 기반한 협력은 더 활발하고 상호이익도 극대화된다 . 퍼트넘 교수는 “사회적 자본은 시민의 사회적 참여를 북돋우는 요소일 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핵심 ”이라고 말한다 .      사회적 자본은 결속형과 연계형으로 구분된다 . 결속형은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내부지향적 , 폐쇄적인 유형이며 연계형은 공적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것과 같이 외부지향적 , 포용적인 유형이다 . 퍼트넘 교수는 “결속형이 강력접착제라면 연계형은 공동체를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윤활유로 후자가 훨씬 중요하다 ”고 말한다.      사회적 자본 줄면 양극화 커져정치적 안정성 해칠 우려도19세기 미국 진보주의자 등장평등·공감대 주창에 사회 반등       퍼트넘 교수에게 사회적 자본은 불평등 , 양극화 심화 등 사회경제적 위기를 풀어갈 해법이기도 하다. 그는 한겨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경제적 불평등 , 사회적 고립 , 정치적 양극화와 문화 사이를 연결하는 인과관계 사슬은 매우 복잡하다 . 하지만 사회경제적 지표가 상승세를 보였던 19세기 말에는 ‘나 ’에서 ‘우리 ’로 ‘연대의 문화 ’가 먼저 형성되고 , 그것이 정치적 협력과 사회적 자본의 증가로 이어졌다 . 이어서 경제적 평등도 향상되었다 ”고 말했다 . 반면 하락세를 보인 1960년대에는 정반대였는데 “‘우리 ’에서 ‘나 ’로의 문화적 변화가 선행했고 이것이 사회적 자본의 감소 , 정치적 양극화 심화 , 그리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증가로 이어졌다 ”고 짚었다 . 이 점에서 퍼트넘 교수의 사회자본론은 사회 구조 보다는 시민적 습속을 중시하는 ‘문화론적 ’ 전통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       퍼트넘 교수의 공동체와 사회적 자본 개념은 양극화 ,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맞서 사회개혁의 실천적 해법을 제시하기에 시대를 거슬러 소환된다 . 2015년 출간된 저서 <우리 아이들 >은 계급적 격차가 어떻게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지는지를 풍부한 사례연구와 데이터를 통해 살핀다 . 퍼트넘 교수는 “1960년대까지는 우리 아이들이라는 인식속에서 이웃들이 함께 아이들을 돌보았으나 양극화로 인해 공동체가 파편화되고 해체되었다 ”고 말한다 . 문제는 사회가 양극화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한 아이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 1950~60년대에 소득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작용했던 사회적 네트워크와 사회적 자본은 이제 부자 아이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한다 . 학력차이는 유아기부터 이미 굳어지며 , 학교는 사회적 자본의 차이가 드러나는 장소가 된다 . 벌어지는 교육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 퍼트넘 교수가 제안하는 해법은 어린 시절부터 공평한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 “가난한 아이들이 당면하는 냉혹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미래는 우리 사회의 번영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심지어 우리의 정치적 안정성마저 훼손할 수 있기 ” 때문이다 .       최근작 <업스윙 >은 퍼트넘의 역사적 낙관주의가 집대성된 저작이다 . 125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과거 진보주의를 일구었던 흔적들을 더듬고 지금의 추세를 반전시킬 희망을 탐색한다 . 19세기 말부터 2020년까지 긴 호흡으로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1960년대를 정점으로 모든 지표들이 하락하는 뒤집힌 U자형이다 . 19세기 말에는 지금보다 더 심한 불평등과 양극화 , 비관적 사회 분위기가 만연했으나 결국 상승세가 나타났다 . “평등 , 상호간 의무 , 공유된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진보주의자들의 등장 ”이 주요한 이유다 . 퍼트넘 교수는 “미국의 125년 역사는 ‘나에서 우리로 , 다시 우리에서 나로 ’ 변화해온 역사 ”라고 말한다 . 어둠의 시대는 가고 영광의 시대가 다시 올 수 있을까 ? “확신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 지난 2년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들 , 특히 젊은이들의 시민 참여는 희망적이다 .” 미국 대통령 4명을 자문한 석학이자 , 사회개혁가의 통찰이다 .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로버트 퍼트넘· 1941년생·  미국 정치학회 회장 , 2006년 정치학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쉬태상 > 수상·  2013년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내셔널 휴머니스트 메달 받음·  영국 <선데이타임즈 >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 

‘탈진실’ 심화된 디지털사회, 권위있는 ‘신뢰의 닻’ 필요

[기사 원문: https://www.hani.co.kr/arti/economy/it/1066232.html]​-오늘날의 불신, 원인과 해법은첨단기술 영향·급격한 사회변동정부 등 기존 신뢰 사슬 무너져시민사회 등 길잡이 역할 절실인공지능 딥페이크 기술은 사람들이 식별할 수 없는 가짜 이미지를 손쉽게 만들어내고 이는 전통적 신뢰를 떨어뜨리는데 활용될 수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born miserable)가 올린 딥페이크 이미지.지난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은 2021년을 “신뢰를 재건하는 중요한 해”라고 규정하고, 그해 4월 도쿄에서 제1회 글로벌 테크놀로지 거버넌스 서밋(GTGS)을 열어 디지털 환경에서 신뢰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관련한 백서를 펴냈다.     신뢰는 사회가 작동하는 토대이자 운영원리로 개인과 공동체의 명운을 좌우하는 요소이지만, 최근 디지털 환경에서 큰 변화에 직면했다. 급격한 사회변화와 경제적 변동, 정치적 분열의 심화, 첨단기술의 파괴적 영향은 전통적인 신뢰 구축 체계와 운영방식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옥스퍼드대 교수 레이철 보츠먼은 <신뢰이동>에서 인류 역사상 신뢰의 구조가 계속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로를 알고 지내던 소규모 지역공동체 시대의 ‘지역적 신뢰’에서 산업화사회를 거치며 계약과 상표, 법률의 형태로 신뢰가 만들어지는 ‘제도적 신뢰’로 옮아갔는데, 오늘날은 기존의 신뢰 장치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형태의 ‘분산적 신뢰’로 이동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인터넷으로 항상 연결된 삶을 살게 되면서 기존의 신뢰 사슬에서 신뢰와 영향력을 만들어내던 집단이 엘리트들과 전문가, 정부 당국에서 가족과 친구, 심지어 낯선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는 현상이다.     디지털 세상의 ‘분산적 신뢰’는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와 블록체인 같은 기술적 장치를 통해 전통적 신뢰체계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도 만들고 있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거대 기술 플랫폼업체들이 사회 구성원들의 개인정보를 축적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신뢰 시스템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책임을 외면하는 현상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플랫폼 기업들이 페이지뷰와 이용시간 증가를 가져오는 허위정보 유통을 방치한 결과, 디지털 환경에서 우리는 갈수록 더 많은 허위정보와 거짓에 노출되는 ‘탈진실 사회’를 살고 있다.     디지털 세상은 개인과 기술이 기존의 권력집단과 신뢰 중개자를 대체하도록 하는 강력한 개인의 시대를 가져왔지만, 개인이 직접 정보의 사실성을 판단해야 하는 저신뢰의 팩트체크 환경을 불러왔다. 지난해 4월 도쿄 서밋에서 발표한 백서 <신뢰 재구축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는 사회가 계속 진보하고 혁신하기 위해서는 지명도와 권위를 지닌 ‘신뢰의 닻(앵커)’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현실에서는 주로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그 역할을 맡는다. 디지털의 분산된 신뢰 시스템에서 신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종교나 국가, 시장 같은 강력한 신뢰의 보증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 관계자인 개인들이 참여하는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신뢰 구축 체계를 모색하는 상황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분열 조장 대중선동 정당 ‘상호관용’ 가치 되찾아야

[기사 원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6217.html]​ [2022 아시아미래포럼]대니얼 지블랫 교수 기조강연: 공적 신뢰 어떻게 회복할까대니얼 지블랫 제공정당은 정치를 통해 공익을 실현하고 시민과 권력을 잇게 하는 집단으로, 전통적으로 믿을 수 있는 기관이었다. 하지만 지금 정당에 대한 신뢰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정당은 민주주의 발전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기 때문에 신뢰 붕괴의 위기를 그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다. 어떻게 해야 정당의 신뢰는 회복될 수 있을까. 과연 정당의 신뢰 회복은 가능한 것일까.   트럼프 시대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분석한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공동 저자인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당이 ‘상호관용’과 ‘이해’, 그리고 ‘자제’라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을 지켜야 신뢰를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당이 상대방을 정당한 경쟁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위협적인 적으로 간주하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다는 것이다. 지블랫 교수는 현대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의 권위자다. <보수 정당들과 민주주의의 탄생>으로 2017년 미국 정치학회가 주는 우드로 윌슨 상 등을 수상했다. 제13회 아시아미래포럼에 기조연사로 직접 무대에 오르는 지블랫 교수를 전자우편 인터뷰를 통해 미리 만났다. 질문과 답변은 각각 9월5일과 10월3일 주고받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치인들, 지지자들 입맛 맞춰라이벌 매도·공격 지나친 몰두 민주주의에 법치주의 필수지만이해·자제 등 법치 밖의 규범들도사회·국가 유지에 중요한 역할 - 정치인들이 상호관용, 이해, 자제와 같은 민주주의의 규범을 쉽게 무시하게 되는 이유는?  “현대 사회는 다양하고 복잡하며 다면적이다. 그 결과 시민들이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분야에서 무엇이 옳고 도덕적인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두고 충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견해가 옳고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지나치게 지지자들이 원하는 쪽으로만 반응한다는 것이다. 지지자들을 위해 정치적 라이벌을 매도하고 공격한다. 관용과 자제와 같은 민주적 규범을 발전시킨 것은 19세기 정치인들이었다. 정치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가 바탕이 됐다. 하지만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은 깨지기 쉽다. 사회가 양극화됨에 따라 더이상 학습되지 않고 점점 더 심하게 망가졌다. 중요한 정치적 이슈에 대한 정당들의 견해차가 확대되면서 정당은 상대방에 점점더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정당이 상대 정당에 대해 위협을 느끼면 민주적 규범들을 지키기가 어려워진다.”   -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정당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중이 합리적 정치인보다 극단주의자를 더 지지하는 이유는? “극단주의자나 대중선동가는 (민주주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에서도 심각한 문제였다. 이들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대중이 원하는 말만 무책임하게 해댔다. 대중은 그들에게 환호했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내재적으로 취약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정당들은 이러한 대중선동가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당들이 부패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선동가들에게 권력의 문을 열어줬다.”   - 민주주의가 헌법과 같은 성문화된 법보다 상호관용과 같은 규범에 더 영향을 받았다면,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와 충돌할 위험이 있나? “헌법과 성문법은 의심할 여지없이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모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법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문화되지 않은 규칙들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러한 규칙들은 가족, 학교, 회사가 어떻게 유지되고, 나아가 사회와 국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관한 것들이다. 여기서 핵심은 성문화되지 않은 규칙들이 법(제도)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 아니면 방해가 되느냐 여부다. 예를 들어 상호관용은 다원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반면 태생적으로 남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인종주의나 성차별은 정치적 평등을 해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방해가 된다.”   - 미국 민주당에 ‘정체성 정치’(개인의 정치적 견해는 인종, 민족, 종교, 성의 등 정체성을 기준으로 형성된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정치)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집권하려면 소수자 집단이 아닌 중도로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에 대한 미국 민주당 안의 논쟁을 일종의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상대의 주장을 왜곡해 전혀 다른 허수아비를 정해놓고 그것을 공격하는 잘못)라고 생각한다. 내가 강조하는 정체성 정치는 전통적 자유주의에 근거를 둔다. 모든 개인은 젠더나 인종, 종교에 관계없이 선거권을 비롯한 국가가 보장하는 권리를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만약 소수민족이나 종교적 소수자가 그야말로 소수라면, 정치인이 이들의 정치적 평등에 무관심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처럼 유색인종 유권자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을 무시하는 것은 정치적인 자살행위다.”   - 미 연방대법원이 지난 여름 ‘낙태 판결’로 미국 사회를 분열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은 과거(특히 1970년대)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가장 훌륭한 모델 중 하나였는데, 왜 이렇게 됐나? “전통적으로 미 연방대법원은 여론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왔다. 대법관이 선출되는 과정은 법적으로 동일하게 유지돼 왔지만, 내용적으로는 많이 변했다. 특히 2016년 대선에서 최다득표를 못했는데도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3명의 대법관을 임명했는데, 이들의 인준 여부를 결정하는 상원도 유권자의 견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연방대법원은 미국의 다수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가 됐다. 만약 최다특표자가 대통령이 되는 제도였다면, 대법원 구성은 지금과 매우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요점은 미국의 ‘반다수주의 헌법’(anti-majoritarian constitution)이 대법원을 여론과 동떨어지게 구성되도록 했고, 대법원의 정당성을 해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끝난 뒤 미국 정치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가? “역사적으로 중간선거는 대통령을 배출하지 않은 정당이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되면(공화당이 승리하면), 미국 정치는 극단적인 싸움판이 될 우려가 있다. 바이든에 대한 탄핵도 시도될 것 같다. 안타깝게도 미국 정치에서 탄핵은 일상적인 사건이 돼버렸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 *대니얼 지블랫· 1972년생 미국 국적· UC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2017년 우드로윌슨상 수상 

분열·고립에 빠진 인류 구할 ‘신뢰의 DNA’ 복원하자

[기사 원문: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66199.html]​ [2022 아시아미래포럼] 분열과 배제의 시대: 새로운 신뢰를 찾아생존 위협받는 지구촌팬데믹·러 침공·미중간 패권경쟁빈곤층 생존 위협하고 기후 악재정당·사법부·언론 등도 신뢰 추락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코로나 팬데믹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세계를 전대미문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향한 포탄은 전장의 시민들뿐 아니라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에너지 및 식량 무기화, 공급망 붕괴에 따른 역대급 인플레이션을 연쇄적으로 일으켜 식량과 연료 지출 비중이 큰 빈곤층에 집중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으로 아동 400만명이 추가로 빈곤 상태에 놓이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보다 무려 19%나 증가한 수치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두 나라는 물론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가난한 나라들에서 많았다. 유니세프는 “가파르게 상승하는 아동 빈곤은 이들의 삶과 배움, 미래를 빼앗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코로나19는 2020년부터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1500만명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경제적 피해도 상당하다. 미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한 피해액은 96조달러(약 10경3968조원)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의 4배에 달한다.           글로벌 차원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다. 하지만 현실은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세계는 오히려 분열과 배제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국제적 협력을 위협한다. 기후위기 속에서 간신히 합의한 탄소중립은 에너지 대란으로 실종될 위기를 맞고 있다. 러시아의 의존도를 줄이려는 유럽연합의 남아프리카공화국산 석탄 수입은 올 상반기에 작년보다 40% 급증했고, 세계 최대 석탄 소비국인 중국과 미국, 인도 등도 석탄 발전을 늘리고 있다. 기후위기에 큰 책임이 있는 글로벌 기업과 거대 금융자본들이 앞다퉈 선언했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도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스지 투자에 앞장섰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올 상반기 투자기업들의 연례주주총회에서 이에스지 관련 주주제안의 24%에만 찬성표를 던졌다. 지난해 상반기 찬성률(43%)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주행으로 인류의 미래는 어두워 보인다. 인류는 과연 전대미문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한겨레신문사가 11월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하는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그 길을 찾는다. 올해 주제는 ‘분열과 배제의 시대: 새로운 신뢰를 찾아’서이다. 포럼에 참가하는 세계적 석학과 전문가, 그리고 현장 활동가들은 포럼에 앞서 인터뷰 등을 통해 인류의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신뢰의 디엔에이를 복원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자고 제안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신뢰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신뢰가 탄탄하게 쌓이면서 협업과 창조의 범위가 확장되고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미지의 대상을 서로 믿게 되는 과정에서 혁신이 생겨났다. 신뢰는 갈등을 완화하고 통합을 강화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는 더욱 포용적이고 개방적이 된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다.          하지만 전통적인 신뢰 기관들이 처한 현실은 암담하다. 정치를 통해 공익을 추구해왔던 정당은 전 세계 어느나라 할 것 없이 신뢰가 붕괴된 상태다. 집권정당의 정책을 반영하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경제적·사회적 불평등 해소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는 임무를 위임받은 사법부도 점점 신뢰를 잃고 있다. 민주국가의 모범적인 사법부로 찬사를 받았던 미 연방대법원은 지난 여름 ‘낙태 뒤집기 판결’ 이후 미국 국민의 4분의 1만 신뢰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권력자와 엘리트를 감시해야 하는 언론도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6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뉴스를 선택적으로 회피하는 이용자의 비율(2022년 69%)이 지난 5년간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언론의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한국의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도(30%)는 조사대상 46개국 중 40위를 차지했다.          위기 넘어설 열쇠는 협력‘초연결’ 소셜미디어 되레 고립 초래극단주의자·소수자 혐오 양산관용·타협·공동체 가치 회복해상생의 미래로 가는 길 찾아야          전통적 신뢰 기관을 믿지 못하는 개인들은 앞다퉈 소셜미디어에 접속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서로 연결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는 제도적 신뢰기관의 공간적·시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야만성은 전쟁터의 시민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코로나 팬데믹을 둘러싼 가짜 정보들도 시민들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통해 걸러졌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는 알고리즘을 통해 사람들을 떼어놓고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더이상 교류하지 않는다. ‘초연결 시대’에서 접속은 무한대로 확장됐지만, 접촉은 점점 어려워진 탓에 전통적인 사회구조가 해체되고 있다. 사람들은 외로움과 소외, 고립의 고통을 호소한다. 고립된 개인은 극단주의자와 포퓰리스트의 좋은 먹잇감이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 진영 간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이유다.          이번 포럼의 기조연사로 나서는 로버트 퍼트넘과 노리나 허츠, 대니얼 지블랫교수 등은 더 늦기 전에 신뢰의 스위치를 다시 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상호관용과 이해, 자제, 타협, 돌봄, 온정, 공동체와 같은 가치에 더욱 친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로 열세번째를 맞는 아시아미래포럼은 분열과 고립을 넘어 상생의 미래로 가는 길을 찾는 여정의 시작이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   

직설의 펭수 “한겨레는 ○○다”…아시아미래포럼 특별 손님

[기사 원문:​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66197.html] 10일 2022 아시아미래포럼명예 편집국장으로 회의 소집‘한겨레’·우리 사회 신뢰 진단거침 없는 ‘사이다’ 매력 기대지난 2019년 ‘1일 보건복지부 장관’이 된 펭수가 집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다. <자이언트 펭티브이> 유튜브 화면 갈무리 올해 아시아미래포럼에는 특별한 손님이 온다. <교육방송>(EBS) 연습생 ‘펭수’다. 펭수가 누구인가? 2019년 3월 <교육방송> ‘자이언트 펭티브이(TV)’로 데뷔해,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타 중 스타다. 데뷔한 첫해 제46회 한국방송대상 어린이 부문 작품상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제56회 백상예술대상 티브이부문 교양작품상, 제47회 한국방송대상 예능인상, 제12회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캐릭터 부문 대통령상까지 휩쓸었다. 지난 8월 열린 팬미팅에서는 5분만에 2천석이 매진되기도 했다. ‘뽀로로’ 같은 대스타가 되고 싶어 남극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건너왔다는 엄청난 체력과 근성을 가진 펭귄이다. 그는 11월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되는 제13회 아시아미래포럼에 특별출연해 <한겨레> 1일 ‘명예 편집국장’이 되어 편집회의를 소집할 계획이다. 펭수를 단순한 엔터테이너로만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현재 국내 최고 명문대 의대 휴학 중이며, 유명 로펌 소속 변호사이기도 하다. 행정부에서도 굵직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1일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외교부와 통일부 등에서 실무를 돕기도 했다. 장관 재임시 직급 대신 닉네임으로 소통하는 유연한 조직문화 구축과 조기 퇴근 정책을 시행해 조직원들에게 큰 지지를 얻기도 했다.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투자금 회수까지 했던 어엿한 사업가이기도 하다.대중은 펭수의 화려한 이력에 환호하는 게 아니다. 누구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는 그의 배짱과 엉뚱하면서도 본질을 꿰뚫는 화법에 열광한다. 교육생 신분으로 소속 회사 사장 이름을 존칭 없이 뻔뻔하게 부르고(“김명중”), 닮고 싶다던 대선배 뽀로로라도 게임에서 늑장 부리면 거침없이 비난한다. 다른 이들이라면 마음속에서 숱하게 외쳤지만 할 수 없었던 그 말, 펭수는 한다. 의례적 미소와 인사말, 길고 지루한 절차. 펭수에게는 필요 없다. 그냥 물으면 된다. “여기 대빵은 어디 있어요?”  펭수를 <한겨레> 명예 편집국장으로 모셔온 것은 위선의 탈을 벗어던지고 우리 사회의 신뢰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서로 신뢰한다는게 무엇을 뜻하는지, 신뢰 회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짚어보자는 얘기다. 둘러갈 것 없이, 펭 국장은 <한겨레>를 어떻게 평가할까? 뉴미디어 종사자이기도 한 그는 미래 언론 지형에 대해 어떤 인사이트를 갖고 있을까? 사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한겨레>는 물론 우리 사회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새로운 형태의 신뢰를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하기 싫은 행동은 하지 않는다. 펭귄이기 때문일까. 인간이 만들어낸 위계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펭수의 거침없는 언행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현대인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그가 누구를 만나거나 어디에 있어도 쩔쩔매거나 돌려 말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안다. 그렇다고 무례하거나 날이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외롭고 지친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따뜻한 말을 건넨다. 동료 물범이 취업에 계속 실패하며 한탄하자 “백수가 아니라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위로하고, 진로를 고민하며 울먹거리는 청년에게 “충분히 자격있다”고 응원한다.  이번 특별세션은 박재홍 <CBS> 아나운서의 사회로 <한겨레> 시민편집인을 맡고 있는 이승윤 중앙대 교수 등이 펭수와 함께 언론에 대한 신뢰와 <한겨레>에 대해 얘기할 예정이다. <한겨레>가 지난 1년여 간 보도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과정 및 결과물 등을 종합·정리한 ‘한겨레 신뢰보고서 2022’와 더불어, <한겨레>의 논조와 방향, 이미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에서 보기 드문 국민주 신문이자 어느덧 서른네살이 된 ‘진보 정론지’ <한겨레>, 돌려 말하지 않는 펭수는 신뢰를 말하려는 <한겨레>에 무슨 말을 할까?  양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변동팀장 ey.yang@hani.co.kr 

분열·배제의 시대, 신뢰를 찾아서…‘2022 아시아미래포럼’

 [기사 원문: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66014.html ]​한겨레신문사 주최 포럼…11월10일 대한상의 국제회의장대니얼 지블랫 교수 등 연사로…손석희 대담·펭수 출연도    국제연합(UN)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에서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가 있다. 주요 국가의 행복도를 6개 지표를 기반으로 조사해 발간하는 ‘세계 행복보고서’다. 올해 공개된 보고서를 보면, 1위에서 8위까지 거의 북유럽 나라들이 차지했다. 미국(16위), 대만(26위), 일본(54위)에 이어 한국은 59위다. 북유럽 국민의 행복도가 높은 것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신뢰지수에서 이유를 찾는다.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는 조세부담에도 국가가 국민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삶의 자유로운 선택과 사회안전망에 대한 믿음, 타인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응집력 등이 행복도를 끌어올리는 대표적 요인으로 꼽힌다. 이념, 세대, 젠더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진영 간 편가르기, 확증 편향, 분노와 혐오로 얼룩지고 있는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세계는 지금 물가 폭등과 기상이변, 전쟁으로 전례 없는 혼돈을 겪고 있다. 팬데믹 시기 풀린 천문학적인 유동성과 부풀대로 부푼 자산가치는 초인플레를 초래했고, 치솟는 금리는 시민들의 삶에 이중의 고통을 안겼다. 미-중 패권 다툼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질서도 혼돈에 빠졌다. 전세계가 지금 만큼 상생의 지혜가 필요한 때도 없었을 것이다. 고립과 분열로 각자도생을 꾀할 것인가, 아니면 상호 관용과 협력, 신뢰에 바탕을 둔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갈 것인가? 한겨레신문사가 올해 13번째 맞는 아시아미래포럼의 주제를 ‘분열과 배제의 시대: 새로운 신뢰를 찾아’로 정한 것은 이런 전환기에 우리가 어떤 가치를 재발견해야 하는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집단지성의 힘을 모으기 위해서다. 포럼에 참가하는 세계 석학들은 “인류의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신뢰의 디엔에이(DNA)를 복원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자”고 제안한다. 먼저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가 기조연사로 직접 무대에 오른다. 실증적 연구를 통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해온 지블랫 교수는 ‘공적 신뢰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정치와 정부, 제도가 왜 신뢰를 잃고 있는지, 신뢰 받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능한지 들려줄 예정이다. 트럼프를 비롯한 극단적 포퓰리스트가 민주주의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공동 저자이기도 한 지블랫 교수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의 사전 인터뷰에서 “정당이 상호관용과 이해, 자제와 같은 성문화되지 않은 규칙들을 지켜야 신뢰를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블랫은 강연 뒤 손석희 전 앵커와 특별 대담을 한다. ‘사회적 자본’ 개념을 통해 현대 미국사회의 위기를 분석한 로버트 퍼트넘 하버드대 교수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신뢰자본이 가능한지 짚는다. 사회적 자본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퍼트넘은 사회 구성원의 상호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조정과 협력을 촉진하는 네트워크, 규범 등을 원천으로 파악한다. 퍼트넘은 저서 <나홀로 볼링>에서 사회 구성원의 신뢰가 사라져 사회적 자본이 쇠퇴하는 현상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퍼트넘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현대사회의 위기를 “공동체의 약화와 헐거워진 신뢰 등 사회적 자본의 하락”에서 찾은 뒤, ‘신뢰와 공동체 복원’을 시대의 난제를 풀어갈 해법으로 제시했다. 노리나 허츠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세계번영연구소 명예교수는 디지털 시대, 새로운 신뢰는 가능한지 탐색한다. 세상 모두가 연결되는 초고속 통신망 사회에 깊어지는 외로움에 주목한 책 <고립의 시대>를 쓴 허츠 교수는 초연결 시대에 고립과 개인주의는 어떻게 확산되고 있으며 또 불평등을 낳고 있는지 짚는다. 이번 포럼에는 연습생 ‘펭수’가 특별출연한다. 펭수는 <한겨레> 1일 ‘명예 편집국장’이 되어 편집회의를 소집한 뒤 시민편집인을 맡고 있는 이승윤 중앙대 교수 등과 함께 언론의 신뢰 문제에 대해 직설한다. 오후 세션에는 4개의 특별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세션 1에서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전국사회연대경제지방정부협의회가 함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지방정부와 시민사회 신뢰기반 구축’을 주제로 민-관 협력과 사회적 경제 발전 방안을 논의한다. ‘신뢰받는 저널리즘의 조건’을 주제로 한 세션 2에서는 국내외 언론학자들과 현직 언론인들이 실추된 언론의 신뢰 문제를 다룬다. <가디언>을 중심으로 가치·정파성· 공정성의 균형 문제를 짚고 국내 언론사 중 처음 신뢰보고서를 펴낸 한겨레에 대한 비평도 예상된다. 세션 3에서는 ‘어떻게 신뢰의 다리를 놓을 것인가’를 주제로 기업인과 학자 등이 이론과 실제의 다양한 솔루션을 탐색한다. 세션 4에서는 정부, 원전 전문가, 환경단체 등이 참여한 ‘탄소중립을 위한 사용후 핵연료 해법’ 토론회가 펼쳐진다. 지구촌의 번영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해온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은 혼돈과 대전환의 시기에 세계가 나아갈 길을 찾는 의미 깊은 자리다. 이번 포럼은 11월10일 오전 8시30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개막한다. (문의 02-2152-5063, 전자우편 2022aff.info@gmail.com, 등록신청 www.asiafutureforum.org)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어젠다센터장 hongds@hani.co.kr